배달 라이더 16명 사망에도 '나 몰라라' 하는 플랫폼

 제조업 산재 통계에서 '질병' 산재가 '사고' 산재를 넘어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 산재하면 끼임·부딪힘·추락 같은 사고를 떠올리지만, 이제는 수십 년 노동으로 축적된 질병 요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중 대부분이 근골격계질환이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1990~2000년대 민주노조운동이었다. 당시 노동안전 활동가들은 "꾀병"이라는 자본의 악선전과 "이건 골병이지 산재가 아니"라는 조합원들의 잘못된 인식과 싸워야 했다. 그들은 주야맞교대 근무 중에도 어려운 전문서적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교육자료를 만들었다. 직접 실태조사를 설계하고 현장을 뛰며 노동자들의 구체적 사례를 수집했다.

 

이 실태조사는 단순한 설문이 아닌 조합원들의 억울한 사연 모음집이었다. "가족들도, 동료들도 꾀병 아니냐 놀려대요", "그동안 맞은 침과 뜸, 한약만 해도 몇 년치 연봉은 됩니다",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자살 충동이 생길 정도에요" 같은 절절한 증언들이 쌓였다. 이런 사례를 모으며 노동안전 활동가들의 확신도 깊어졌고, 꾀병 취급하는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대한 분노로 점거농성도 이어졌다.

 

2000년대 초중반, 민주노조운동은 중요한 실험을 시도했다. 단위노조 위원장이 바뀔 때마다 간부를 교체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노동안전 분야만큼은 전문성을 고려해 연속성을 보장했다. 정부 공무원이나 회사 안전담당자는 1~2년마다 교체되는데, 노조에는 4~5년 경험을 쌓은 전문 활동가들이 포진하게 됐다.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안전 분야에서 노조운동이 정책역량과 전문성까지 정부와 자본을 앞선 시기였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노조운동은 심야노동을 줄이는 주간연속 2교대제까지 밀어붙였다. 돌연사로만 치부되던 사망사고의 원인이 장기간 반복된 심야노동에 있음을 밝혀내는 데까지 나아갔다. IMF 구제금융 시기에 타격을 입었던 민주노조운동은 2000년대 들어 근골격계 산재 인정과 주간연속 2교대 등 노동안전을 의제로 다시 전진했다.

 


오늘날 배달 라이더 산재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6명의 배달 라이더가 산재로 사망했지만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인정되지 않았다. 중대재해법은 플랫폼노동자에게도 적용되지만,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야 한다는 조건이 문제다. 배달 라이더에게 적용되는 산안법 조항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활물류서비스법 제36조를 보면, 과로 방지와 안전 확보를 위한 휴식시간 제공, 기상악화 대비 안전대책 마련 등의 조항이 있다. 쿠팡이츠 골드플러스 리워드 조건을 충족하느라 하루 12~14시간씩 일하다 사망한 라이더 사건에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2주간 400건 배달은 주 100시간에 달하는 초장시간 노동으로, 폭염과 폭우 속에서 이런 노동은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플랫폼기업들은 알고리즘을 통해 라이더의 도로 위 행동패턴을 통제한다. 배달 지연 시 앱이 자동으로 질문 메시지를 보내 라이더가 주행 중에 스마트폰을 조작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산재를 유발하는 알고리즘'이라 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배달 라이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알고리즘 연구가 활발하다. 주행 중 메시지 응대 차단, 음성 소통으로의 전환, 악천후 시 안전 가중치 높이기 등 다양한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알고리즘을 직접 조사·감독하고 규제하지 않으면 라이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근골격계질환도 산재가 될 수 있다는 상식을 만들어냈던 민주노조운동의 힘과 전통을 되살려, 배달 라이더의 산재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