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꽃게'는 가짜? 당신이 몰랐던 간장게장의 진짜 '원조' 정체

 꽃게 금어기가 풀리면서 시작된 파격 할인 행사에 밥상 물가 걱정이 깊던 주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다. 살이 꽉 찬 제철 꽃게는 밥도둑 간장게장의 대표 주자로 군림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간장게장=꽃게’라는 공식이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것이라면 어떨까? 놀랍게도 우리 조상들이 최고의 별미로 꼽았던 간장게장의 원조는 꽃게가 아닌, 추수철 황금빛 논두렁에서 잡히던 ‘참게’였다.

 

소설가 박완서는 수필을 통해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발라주시던 참게 등딱지 속 고소하고 찐득한 내장의 맛을 그리움 가득한 문체로 묘사한 바 있다. 이처럼 참게장은 한때 가을의 진미를 대표하는 음식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함께 찾아온 환경오염으로 참게가 더 이상 논에서 서식하기 어려워졌고, 민물 게의 숙명과도 같은 기생충(디스토마) 감염 위험까지 대두되면서 참게는 점차 우리 밥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 빈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새로운 ‘밥도둑’으로 등극한 것이 바로 꽃게인 셈이다.

 

한국 참게는 크기가 작아 살을 발라 먹기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중국의 사정은 다르다. 특히 상하이와 저장성 등 양쯔강 이남 지역의 참게는 ‘다자셰(大閘蟹, 대갑해)’라 불리며, 우리나라 참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큼지막한 크기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가을철 반드시 맛봐야 할 최고의 별미로 꼽힌다.

 


중국의 대문호 루쉰 역시 소문난 미식가이자 참게 애호가였다. 그의 고향 샤오싱 지역에서는 참게를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즐겼는데, 이는 놀랍게도 우리의 간장게장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살아있는 참게를 지역 특산주인 황주(샤오싱주)에 통째로 담가 숙성시킨 ‘쭈이셰(醉蟹, 취해)’, 즉 ‘술에 취한 게’라는 낭만적인 이름의 요리다.

 

물론 중국에서도 제철 참게는 상당한 고가에 팔린다. 통째로 즐기기 부담스럽다면, 현지인들이 발전시킨 ‘게 내장’ 요리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만두 속에 뜨거운 육수가 가득한 ‘샤오롱바오(소롱포)’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돼지기름이나 닭발 등을 우려낸 국물을 차게 식히면 젤리처럼 굳는데, 이 젤리를 만두소와 함께 넣고 찌면 다시 액체로 변해 육즙이 터져 나오는 원리다. 여기에 돼지고기 대신 고소한 게 내장을 넣으면 그 풍미는 차원이 달라진다.

 

‘셰황두부(해황두부)’ 역시 저렴한 가격으로 게의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가성비 메뉴다. 꼼꼼하게 발라낸 게 내장을 연두부와 함께 부드럽게 볶아낸 이 요리는 수프처럼 따끈하고 부드러워 노인이나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큐정전’ 등을 통해 중국인의 구습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루쉰에게 평생의 마음의 양식이 되어준 것은 고향 샤오싱의 향토 요리였다. 그의 소설 ‘공을기’의 배경이 된 식당 ‘함형주점’에서는 지금도 루쉰이 즐겨 먹던 ‘쭈이셰’와 돼지고기 시래기 조림인 ‘깐차이먼로우’를 맛볼 수 있다. 한 작가의 영혼을 달래주었던 ‘게 한 마리’의 이야기는 단순한 미식을 넘어 역사와 문화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