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우리끼리 싸운다…한국 당구, 가장 행복하고도 가장 잔인한 대진표 받았다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리고 있는 제77회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의 기세가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5명의 국가대표 중 무려 4명이 본선 32강 무대를 밟게 되면서 세계 당구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한국 당구의 에이스인 조명우를 필두로, 베테랑 허정한과 김행직, 그리고 패기 넘치는 신예 이범열까지, 각기 다른 스타일의 선수들이 모두 예선을 통과하며 한국 당구의 저력을 유감없이 뽐내는 중이다. 특히 이번 성과는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친 결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세계 최강자들이 총출동한 별들의 전쟁터에서 한국 선수들이 초반부터 판을 흔들며 강력한 우승 후보국의 입지를 다지고 있는 셈이다.

 

선수 개개인의 활약상을 뜯어보면 더욱 놀랍다. 베테랑 허정한은 예선 두 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며 조 1위로 가뿐하게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고, 세계선수권에 처음 출전한 이범열은 1승 1패의 성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32강에 이름을 올렸다. 첫 출전이라는 부담감을 이겨내고 세계적인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그의 대담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예선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김행직의 경기였다. 그는 벨기에의 '살아있는 전설' 프레데리크 쿠드롱을 상대로 단 19이닝 만에 40-25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를 만들어내며 극적으로 본선에 합류했다. 세계 최강자를 상대로 보여준 완벽한 경기력은 그가 왜 한국 당구의 핵심 선수인지를 증명하는 명장면이었다.

 


물론 한국 선수들의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이번 대회 본선 32강은 그야말로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 불릴 만큼 역대급 라인업을 자랑한다. 최근 월드컵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나눠 가졌던 독일의 마틴 혼과 튀르키예의 타이푼 타슈데미르를 비롯해, '사대천왕'으로 불리는 딕 야스퍼스(네덜란드), 토브욘 블롬달(스웨덴)은 물론, 벨기에의 강자 에디 멕스, 이탈리아의 마르코 자네티, 베트남의 쩐뀌엣찌엔까지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세계 톱랭커들이 대거 생존해있다. 각국의 자존심을 건 강자들이 총출동한 만큼, 매 경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선수들이 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뚫고 최종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16일 오후 7시부터 50점제 녹다운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32강전에서 벌써부터 한국 선수들 간의 피할 수 없는 맞대결이 성사되었다는 것이다. '디펜딩 챔피언' 조명우와 '쿠드롱 킬러' 김행직이 16강으로 가는 길목에서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치게 된 것. 이 경기의 승패와 관계없이 한국은 최소 1명의 16강 진출자를 확보했지만, 동시에 강력한 우승 후보 두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탈락해야 하는 잔인한 대진이기도 하다. 팬들로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인 셈이다. 한편, 허정한은 미국 대표, 이범열은 베트남 대표 선수와 각각 16강 진출을 놓고 격돌할 예정이다. 이 모든 경기는 SOOP과 다양한 TV 채널을 통해 생중계되어 안방에서도 선수들의 숨 막히는 플레이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